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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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걱정하지 말게 거미여

입력 2018-11-30 00:10:01


“걱정하지 말게, 거미여. 나는 게을러서 집안 청소를 잘 안하니까.” 일본의 전통 하이쿠 시인 이싸의 시입니다. 동양화의 여백처럼 게으른 틈이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그 틈으로 나도 들어가고 그도 들어와 100개의 감추어진 뜻도 찾아내고 다정한 낙서도 하고 더 많은 이야기와 여운과 느낌표를 채울 수 있는 사람. 적당히 비어 있어 말을 걸 수 있고 터를 잡을 수 있는 사람. 한 줄의 꽉 찬 문자처럼 허무하지 않고, 긴 공란이 있는 한 줄의 편지처럼 울림을 주는 사람. 미완성의 웃음을 가진 사람. 추수할 때도 나그네를 위해 모퉁이는 남겨 두고, 알곡 꾸러미도 대충 흘리는 사람. 그런 사람의 여백 속으로 들어가 쉬고 싶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즐기려면 시장이 반찬이라 합니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은 모두 각자의 여백을 지니고 있는 부족한 것들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보면 길가의 흙이 나옵니다. 딱딱하게 굳어져서 씨앗이 들어 올 틈이 없는 사람입니다. 빈틈이 없는 사람은 결국 숨 쉴 틈도 없어집니다. 갈증과 목마름과 부족함의 빈틈이 있어, 그 틈으로 생명의 빛이 들어 올 수 있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걱정 말아요 거미. 난 청소를 안 해요. 걱정 말아요 첫 눈. 빗질 않고 한참을 바라볼께요.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막 6:31)

한재욱 목사 (서울 강남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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