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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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배병우] ‘덩샤오핑 모델’의 명암

입력 2018-05-05 05:05:03


1978년 12월 열린 중국공산당 11기 3중전회는 중국의 개혁개방을 결정한 역사적 전환점으로 일컫는다. 중국은 이후 덩샤오핑(鄧小平) 주도로 개혁개방을 일관되게 실행해 왔다는 게 일반적 통념이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1980년대 내내 천윈 등 보수파와 개혁파 간 노선 투쟁이 치열했다. 보수파의 반격으로 덩이 후계자로 염두에 뒀던 후야오방과 자오쯔양 등 개혁파 당 총서기 2명이 낙마하기도 했다. 특히 1989년 봄 천안문 사건 이후 1990∼1991년에는 개혁개방이 사실상 중단됐다. 이를 정면 돌파한 게 1992년 1∼2월 덩의 남순강화(南巡講話)다. 덩은 선전과 주하이 등 남방의 경제특구를 시찰하며 개혁개방을 반대하는 보수파의 주요 이론과 주장을 통렬히 비판했다. 이것이 보수 노선을 따르던 장쩌민 총서기의 ‘전향’을 이끌어내 1992년 10월 공산당 14차 당대회에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덩샤오핑 이론이 확립됐다. 개혁개방 노선이 최종적으로 승리하고 비약적인 경제발전이 시작된 것은 이때부터다.

덩은 경제에서는 실용주의자였던 반면 정치에서는 보수파였다. 사회주의 견지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중국공산당의 통치 등 ‘4개 항의 기본이념’을 국가기본목표로 못 박았다. 다당제, 언론자유 등 정치개혁 요구를 부르주아 자유화라며 탄압했다. 천안문 사건을 유혈 진압한 것은 그의 보수성을 잘 보여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식 개혁개방 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북한은 지난달 30일 당·국가·경제·군부의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제발전을 위한 연석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서 모든 역량을 동원한 강력한 사회주의 경제건설이 논의됐다. 김 위원장은 고속 성장과 전면적 대외개방을 추구하되 공산당 일당 영도체제를 강력히 견지하는 ‘덩샤오핑 모델’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개혁 전면 수용, 정치개혁은 거부’로 요약되는 덩샤오핑 개혁노선은 중국 지도부의 국가운영 철칙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저명한 중국 전문가인 데이비드 샴보 미 조지워싱턴대 교수 같은 이는 중국 경제가 질적인 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치적 통제 완화가 필수적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중국은 침체의 늪에 빠져 쇠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배병우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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