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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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라동철] 시간 공동체 복원

입력 2018-05-04 05:05:04


때를 뜻하는 시각은 같은 시점이라도 지역에 따라 제각각이다. 우리나라가 낮 12시일 때 이웃인 중국은 오전 11시, 지구 반대편의 브라질은 밤 12시다. 시각의 기준이 되는 표준시가 다르기 때문이다.

러시아 미국 등 동서로 길게 펼쳐진 일부 국가들은 여러 개의 표준시를 사용한다. 그러나 생활상 필요나 정치·경제적 이유에서 단일한 표준시를 채택한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을 지나는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설정된 표준시를 적용하고 있다. 동경 120도와 135도 사이에 위치해 있지만 경도 15도 단위로 표준시를 적용하는 국제적 관례를 따르고 있다.

북한은 우리와 같은 표준시를 사용해 오다 2015년 8월 15일 한반도의 중심선을 지나는 동경 127도30분을 적용한 표준시로 바꿨다. 1908년 대한제국 때 사용했던 표준시로 돌아가 일제 잔재를 청산하겠다는 게 명분이었다. 이후 북한은 우리보다 30분 느린 시각을 사용했다. 남측에서 오전 9시는 북측에서는 오전 8시30분이었다. 남북이 비슷한 경도상에 있지만 30분의 시차가 발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개성공단 입·출경 시간을 양쪽이 다르게 해석하는 등 남북 교류 과정에서 혼선과 불편이 발생했다.

북한이 5일부터 표준시를 우리에게 맞춰 원래대로 되돌린다.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 약속을 곧장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남북이 2년8개월여 만에 시간 통일을 이루는 셈이다.

북한이 선뜻 표준시를 변경하는 것은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상징적인 조치로 보인다. 북한식 정통성이나 명분에 얽매이지 않고 실리를 위해 유연성을 발휘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시차가 사라지면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가시화될 남북 교류 확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 표준시 통일은 남북이 같은 시간을 기준으로 생활하는 ‘시간 공동체’를 복원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남북이 시간적 동질감을 바탕으로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라동철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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