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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살았는데 불법체류자 전락… 英 ‘윈드러시 세대’ 분노

입력 2018-04-26 05:05:03


전후 경제 재건 위해 불러 놓고 이제 와서 “증명 못하면 추방”
카리브해 식민지 출신 서류 없어… 메이 총리 사과했지만 비난 확산


렌포드 매킨타이어(64)는 10살 무렵 부모와 함께 고향인 남아메리카의 자메이카를 떠나 영국에서 살기 시작했다. 이후 50년간 그는 영국의 식민지에서 온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일하면서 영국 정부에 꼬박꼬박 세금을 냈다. 매킨타이어는 당연히 자신이 영국인으로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그렇지 않았다. 매킨타이어는 60세가 되던 해 ‘불법 이민자’로 분류됐다. 그는 일자리를 잃었고, 집도 얻을 수 없었다. 그것이 ‘윈드러시 세대(Windrush generation)’의 현실이었다.

윈드러시 세대는 2차대전 직후 영국 경제 재건을 위해 카리브해 연안 영국의 식민지 국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을 가리킨다. 최근 영국에서 윈드러시 세대에 대한 정부의 가혹한 처우가 비난을 받고 있는 가운데 뉴욕타임스(NYT)가 24일(현지시간) 이 세대의 절망감을 조명했다.

2012년 당시 내무장관을 맡고 있던 테리사 메이(사진) 현 총리가 불법 이민자들을 몰아내려는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원드러시 세대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정부는 윈드러시 세대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증빙자료를 까다롭게 요구했다. 1948∼71년에 영국으로 건너온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곤경에 처했다. 당시 식민지에서 이주해 온 윈드러시 세대는 신분을 증명할 제대로 된 서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영국에서 학교를 다닌 기록, 일하고 세금을 낸 기록을 모두 제출해도 은행에서 집 구할 돈을 빌릴 수 없게 됐다. 그 숫자는 적게는 5만명, 많게는 5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달 중순 영국과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국가들의 모임인 영연방 정상회담이 런던에서 열린 와중에 문제가 커지자 부담을 느낀 메이 총리는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윈드러시 세대 후손들은 이 문제가 영국 정부의 무능이나 미숙한 일처리가 아니라 과거 제국주의의 꺼림칙한 결과물에 대한 의도적인 외면이라고 지적한다. 윈드러시 세대의 후손 다네샤 포르테(37)는 “어떻게 우리를 괴롭힐 수 있느냐”며 영국 정부를 “극악무도하다”고 비난했다.

왕위 계승서열 6위인 해리 왕자가 백인과 흑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배우 메건 마클과 결혼하기로 하면서 영국 사회에서 계속돼 왔던 인종차별에 대한 흑인들의 불만도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52년 자메이카에서 떠나온 대니 킨(70)은 “윈드러시 세대 이민자들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보면 우리가 처음 영국에 왔을 때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떠오른다”면서 “길거리에서 누군가 나를 붙잡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고 말하기도 하고, 상점 간판에 ‘아일랜드인과 개와 흑인은 출입금지’라고 써 있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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