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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김나래] 선생님은 왜 괴물이 됐나

입력 2018-03-02 17:40:01


연일 터져 나오는 미투(#MeToo) 관련 소식에 오늘도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피해자들의 고백은 빙산의 일각 같다. 힘겹게 수면 위로 떠오른 고백 아래로 지금까지 그들이 달고 살았던 두려움과 거대한 아픔이 보인다. 그들의 영혼이 불안과 고통에 잠식당한 채 살아온 시간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가해자들의 태도는 우리를 더 아연하게 만든다. 그 안이하고 빈약한 상황 인식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가장 끔찍한 건,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운 추악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선생님’ 소리를 듣는 이들이란 점이다. 그들은 자기 분야에서 ‘학예가 뛰어난 사람을 높여 이르는’ 의미의 선생인 동시에 대학교와 현장에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몇몇은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다루는 예술가였다. 인간의 존재와 예술을 논하던 선생님들이 어쩌다 권력형 성 착취를 서슴지 않는 괴물로 전락했을까.

그럴듯한 답변 하나를 아일랜드의 인지신경과학자 이안 로버트슨의 책 ‘승자의 뇌’에서 찾을 수 있었다. 섹스와 권력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분출을 유발시켜 성욕과 권력욕을 증가시킨다. 뿐만 아니라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분비를 촉진시켜 뇌가 작동하는 양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승리를 경험하고 권력을 쥐게 된 이들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줄고, 자신이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을 보였다. 인간은 크든 작든 일단 권력을 잡으면 어떤 식으로든 위험해질 수 있음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됐다는 얘기다.

그동안 우리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고자 앞만 보고 달리던 리더를 추앙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런 리더의 시대는 진즉 끝났다. 몇 해 전부터 쏟아진 갑질 논란과 작금의 미투를 보면 이제는 오히려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권력을 부여하고, 어떻게 감시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더 절실해 보인다. 위대한 정치지도자로 평가 받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모든 사람이 역경을 견뎌낼 수 있지만, 당신이 누군가의 인격을 시험해 보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줘 보라”는 말을 남긴 건 의미심장하다.

권력자 하면 대통령이나 정치인, CEO와 같은 거창한 자리를 떠올리지만 꼭 그렇지 않다. 때론 우리 일상의 권력관계가 더 문제다. 내가 다니는 회사나 학교, 교회, 심지어 가정 안에서도 엄연히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를 쓴 11년차 초등학교 교사 김현희씨는 교사가 된 뒤 교실 안에서 교사가 가진 영향력이 막강함에 놀랐다고 고백한다. 자신도 권력에 도취돼 뜻하지 않은 실수를 저지른 경험을 소개하며 바람직한 교사의 권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2018년 한국사회를 덮친 미투 운동이 상처만 남기고 사라지지 않도록 다뤄야 할 과제가 적잖다. 가해자 처벌부터 피해자에 대한 위로와 보상, 2차 피해 방지책 마련, 관련법과 제도의 정비에 이르기까지 살펴야 한다.

동시에 이 문제의 근원을 따져보면 좋겠다. 권력을 가졌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 이 질문을 저마다 스스로 물어보길 바란다. 성 착취와 갑질, 꼰대질은 괴물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크든 작든 내가 가진 힘의 실체를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고, 권력의 남용과 일탈 가능성을 경계하지 않는 순간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일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와 권력의 실체, 여기서 발생하는 위계와 서열, 그리고 올바른 관계에 대해 다시 기준을 세워야 한다. 타인 역시 나만큼 소중한 존재이며, 나와 다르지만 인간으로서 내가 그에게, 그가 나에게 지켜야 할 예의가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1세기 유대인의 선생이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이미 이런 가르침을 남겼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미워하고 피했던 이들의 곁에 앉아 그들의 아프고 힘겨운 삶의 고백을 들어주고, 그들을 끝까지 사랑한 선생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우리가 제대로 기억하지 않고, 따르지 않을 뿐이다.

김나래 종교부 차장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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