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전체메뉴보기 검색

[나와 예수-조용진] “한복 입은 루터 초상, 독일교회에 선물합니다”

입력 2017-07-10 00:05:01
조용진 서울교대 명예교수가 지난 5일 서울 사당로 연구실에서 자신이 만든 마르틴 루터 두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마르틴 루터 두상을 바탕으로 그린 ‘한복 입은 마르틴 루터의 초상화’ 스케치. 강민석 선임기자


“가톨릭대 의대에서 7년간 해부학을 공부하며 수많은 커대버(해부실습용 시신)를 해부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에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깊이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과학으론 설명할 수 없는 인체의 신비를 마주했거든요. 제게는 신앙이 깊어지는 여정이었죠.”

‘한복 입은 마르틴 루터의 초상’을 그리고 있는 조용진(67) 서울교대 명예교수는 해부학 실습 중에 만난 창조섭리 이야기부터 끝냈다.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흠모해 독학으로 해부학을 공부했다. 1972년에는 가톨릭대 의대 해부학교실에 조교로 채용돼 본격적으로 해부학을 공부했다. 이후 도쿄예술대에서 미술해부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 동작구 초대교회(강병철 목사)를 집사로 섬기고 있는 그는 한사코 “신앙이 깊질 못해 남에게 소개할 형편이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조 교수의 작품에서 신앙의 흔적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복 입은 마르틴 루터의 초상화 작업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지요. 자연스럽게 루터에게 끌렸고 한국적 해석을 가미하고 싶어 한복 입은 종교개혁가를 동양화로 그리게 됐습니다.”

비단의 뒤편에 채색하는 배체기법으로 그리고 있는 루터의 초상화는 80% 이상 작업이 진행됐다. 조 교수는 작품이 완성되면 세계루터교연맹(LWF)을 통해 독일교회에 기증할 예정이다.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 성문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한 10월 31일을 기념하는 의미다.

조 교수는 초상화와 두상 조각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에 있는 대가다. 6000여년 전 신석기 시대에 살았던 ‘연대도인’의 얼굴 모습도 조 교수의 손끝을 거쳐 복원됐다. 유골만으로 얼굴을 복원해내는 조 교수의 실력은 미제사건 수사에서도 빛을 발했다.

초상화와 해부학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조 교수는 “인체의 구조를 정확히 알아야 실물과 가장 흡사한 두상을 만들 수 있고 그 두상이 있어야만 제대로 된 초상화를 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루터의 초상화도 이 같은 과정을 거쳤다. 1592년 루카스 크라나흐가 그렸던 ‘마르틴 루터의 초상’이 원재료가 됐다. 이 그림을 보고 두상을 조각한 조 교수는 “이 단계에서 해부학적 지식이 가장 필요하다”고 했다.

“아무리 잘 그린 초상화라도 그 그림이 실제 인물과 똑같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초상화나 사진을 해부학적 지식으로 분석해 얼굴 전체의 특징을 분석한 자료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두상을 조각하는 게 다음 순서입니다. 이 두상을 보고 초상화를 그려야만 실제 인물과 가장 가까운, 완전히 새로운 결과물을 창조해 낼 수 있습니다.”

지난 5일 조 교수를 만난 동작구 연구실에선 직접 만든 두상과 흉상, 초상화 등 수많은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실존했던 인물들의 조각상과 초상화는 말을 걸면 대답이라도 할 것처럼 정교했다. 작품을 감상하던 기자에게 조 교수는 한국 초상화의 위상을 높이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조선은 당대에 초상화를 가장 잘 그렸던 나라였습니다. 화려했던 그 역사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루터 초상화가 한국의 초상화 수준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문득 예수님의 얼굴을 복원할 계획은 없는지 궁금해졌다. “생각해 본 일이 있긴 합니다. 가능할 것도 같고요. 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결국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더욱 중요한 것 아닐까요.”

글=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