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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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김재열 뉴욕센트럴교회목사(8)"험지로 가자" 카나다 이민목회 사역의 길로

입력 2020-11-24 11:34:20
김재열목사가 1987년 11월 서울 산성교회 목회시절 2,000명 초청 전도잔치를 개최하면서 나눠준 전단지.


1984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주변 지하실 한 칸을 얻어 시작한 산성교회는 몇 년 만에 270여명이 모이며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교회창립 멤버들의 견제가 너무 심해 87년 사임했다.

신학교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어려운 목회지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천 길병원 원목 인터뷰까지 마쳤다. 아내가 기도하더니 “원목 사역은 아니다”라고 했다.

창립멤버들 견제로 산성교회서 사임
주님 인도하심 따라 토론토에서 목회


김명혁 강변교회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김재열 목사, 혹시 캐나다 갈 생각 없나.” 그 교회가 어떤 곳인지 알아봤다. 20여명 모인 교회인데 지난 10년간 6명의 목회자가 바뀌었다고 했다. “어려운 곳으로 가라는 주님의 인도하심이라 믿고 가겠습니다.”

88년 12월 네 식구가 함께 캐나다 토론토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해외는 처음이었다. 토론토 반석교회에 부임했는데,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갑자기 지구본 위에 점 하나 찍힌 곳에 가는 느낌이 들었다. 외로움이 밀려왔다.

이민 목회 사역을 기도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혼자 토론토 근교 예수원이라는 기도원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폭설이 내려 차량이 길 한가운데 꼼짝없이 갇혔다. 사역의 앞날도 답답한 마당에 길마저 보이지 않으니 큼지막한 돌덩이가 마음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확실한 음성을 주셨다. “아들아, 내가 너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할 것이다.” 이는 내가 서울 남대문 대도백화점에서 의류사업을 할 때 엑스플로74 대회에 참가해 받았던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즉시 운전석에서 내려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주여, 잠시라도 믿음 없었던 종을 용서하소서. 주님께서 평생 같이해주신다고 했는데 이 못난 종이 딴생각을 했습니다. 주여, 회개합니다.”

기도원에서 1주일 금식하면서 이민목회가 하나님의 확실한 인도하심이라는 응답을 받았다. 주일에 한 번밖에 없던 예배를 늘렸다. 매일 새벽 제단을 쌓고 수요일 오전·오후 예배를 신설했다. 주일학교도 새로 만들었다.

새벽 5시 30분 새벽예배를 시작했는데, 처음 3개월 동안은 우리 부부만 기도했다. 어느 날부터 여집사가 부부싸움을 한 뒤 출석하기 시작했다. 그 집사가 응답을 받았다며 소문을 내자 삽시간에 30여명이 모였다. 전 교인이 20명인데, 이웃교회 교인도 10여명이 나오기 시작했다.

주일예배는 캐나다인들이 출석하는 성공회 교회건물을 빌려서 주일 오후 1시 30분에 드렸다. 캐나다 교인들은 주일 오전에 한 번만 예배를 드렸기에 사실상 우리 교회처럼 건물을 사용했다.

교회는 1년 만에 출석 성도가 150명으로 불어났다. 주일학교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공간이 필요했다. “하나님, 새 예배당을 주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90년 10월이었다. 장로 한 명이 달려왔다. “목사님, 우리교회가 조만간 건축할 것 같습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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