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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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김재열 뉴욕센트럴교회 목사(6)"빨리 망하고 목회하자"...매상 대부분 헌금

입력 2020-11-20 07:37:37
김재열 뉴욕센트럴교회 담임목사가 1974년 김숙희 사모와 서울 이화예식장에서 결혼예배를 드린 후 사진을 촬영했다. 

“여보, 나 다시 신학교로 돌아가 신학공부를 해야겠어요. 사업이 아무리 잘 돼도 기쁨이 없어요. 염치없지만, 당신이 뒷바라지 좀 해주시오.”

신학교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한 1974년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평신도로 살날이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마음껏 헌금 한 번 바쳐봐야 나중에 목회할 때 간증 거리라도 있지 않겠나.’

그때부터 주를 위해 망하기로 작정하고 하루 매상으로 들어온 돈 중 일부를 세지도 않고 누런 종이봉투에 담았다. ‘이렇게 하면 금세 망할 것이다. 더이상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으려면 철저히 망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나보다 높고 컸다. 주를 위해 망하려 했지만, 사업은 오히려 날개 단 것같이 번창했다. 당시 원남교회 집사 시절이었는데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아파트를 분양받고 서초구에 땅도 매입했다.

경기도 부천으로 옮긴 서울신대를 찾아갔다. 학교를 떠난 지 9년 만이었다. 학교를 둘러보니 입학 동기가 교수가 돼 있었다. 창피했다. 교무처를 찾아갔다.

“제가 뒤늦게 복학하려 합니다.” “문교부 정관에 입학과 졸업 연도가 10년을 넘을 수 없습니다.” “그럼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다른 신학교로 편입하면 가능합니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 총신대 신학부 2학년에 들어가 3년 만에 학부를 졸업했다. 37세로 두 아이의 아빠였을 때다.

그런 사이에 총신대에서 나온 분들이 합동신학교(현 합동신학대학원대)를 개교했다. 그래서 합동신학교에 입학했다. 이 학교는 박윤선 신복윤 윤영탁 김명혁 박형용 교수님과 신학생들이 함께 시작한 신학교로 철저한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하고 있었다.

1978년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을 떠났던 김재연 전 칼빈대 총장이 잠깐 서울을 방문했다. “야, 김 전도사. 결국 주의 길로 다시 돌아왔구먼. 잘했어. 하나님이 부르실 때 곧바로 순종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야. 혹시 강남에 유명한 교수님이 교회를 맡았다고 하시는데 함께 가보지 않겠어.” “그래? 마침 새로운 교회를 찾던 중이었는데 잘됐네.”

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소망교회 건너편의 영안교회였다. 김명혁 교수님이 목회를 겸임하고 있었는데, 인사를 드렸더니 교육전도사를 맡아달라고 하셨다.

김 목사님은 부친의 순교 정신에 따라 순수한, 하나님 중심의 신앙인격을 갖고 계셨다. 하지만 이것이 그 교회 설립 멤버들에게 맞지 않았고 김 목사님이 갑자기 사임하시는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 가족도 함께 섬길 교회가 없어졌다. 김 목사님을 찾아갔다. “목사님, 개척 교회를 시작합시다.” “저는 이제 신학생들을 가르칠 것입니다.” 김 목사님은 첫 목회에 실망해 목회에 미련을 갖지 않고 계셨다. 그러나 끈질기게 부탁했다. “그럼 교회가 없는 지역을 찾아봅시다.”

그때부터 주일 오후에 차를 타고 인천 오산 동두천 등을 6개월 이상 돌아다녔다. 결론은 사람 사는 곳마다 이미 교회가 있다는 것이었다. 더이상 개척할 지역이 없었다. 마침 교회가 없는 곳이 있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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