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전체메뉴보기 검색

[역경의 열매]김재열목사(2)기도후 놀라운 영적체험 "자네 폐결핵 다 나았어"

입력 2020-11-14 06:23:17
김재열 뉴욕센트럴교회 담임목사. 


손에 잡힌 것은 ‘박군의 심정’이라는 그림전도지였다. 맨 끝에 있는 영접기도를 진솔하게 읊조렸다.

“주 예수님, 오늘부터 저는 당신을 제 인생의 주인으로 모십니다.” 그런데 희한한 체험을 했다. 갑자기 몸이 붕 뜨는 것 같았다. ‘아, 중생의 체험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그때부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생사를 초월하는 자유와 기쁨이 샘솟기 시작한 것이다. 국립마산결핵요양원에서 죽으려고 시도했던 것들이 생각나 부끄러워졌다.
 
'박군의 심정' 전도지. 김재열목사가 1964년 국립마산결핵요양원에서 치료받을 때 이 전도지를 보고 회심했다. 

전도지 보고 영접기도 읊조린 후
생사초월하는 자유와 기쁨 샘솟아
요양원 생활 6개월 만에 퇴원


1964년 요양원에 들어간 지 6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담당 의사가 밝게 웃었다. “김군, 축하하네. 자네 폐결핵이 다 나았어.” “아,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래서 서울의 일요신문사 상무이사로 재직하던 아버지께 편지를 썼다. 그런데 답장이 왔는데 의외였다.

“재열아, 서울은 공기도 나쁘고 시끄럽다. 널 퇴원시키려고 그러는 것이다. 폐병은 쉽게 낫는 병이 아니다. 집에 올 생각 말고 큰집에 가거라.”

아버지의 명령대로 전남 여천군(현 여수시) 삼일면 큰집으로 갔다. 조용한 시골 어촌이었는데, 지금은 여수국가산업단지(여천공단)로 바뀌었다. 그곳엔 교회가 없었는데, 어느 날 도시에서 내려온 장로님 한 분이 방앗간 주인과 함께 가게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방앗간에서 멍석을 펼치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젊은이는 나 혼자였고 대부분 아이와 노인이었다.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큰 소리로 찬송하다 보니 찬양 대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느 수요일 밤 예배에서 사촌 동생과 함께했는데, 장로님이 기도를 시키는 게 아닌가. 내가 믿음이 좋은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 “자, 이제 우리 젊은 김 선생이 기도를 하겠습니다.” “하, 하나님. 저, 저희가 신도가 되게 해주시고… 주님께 감사하고 기도를 마무리합니다. 아멘.”

그때까지 공식적 자리에서 기도해본 적이 없었다. 진땀을 흘리며 기도를 마치고 ‘다시는 교회 다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느 날 장로님이 큰집에 찾아오셨다.

“김 선생, 그때 기도를 참 진지하게 잘했어요. 신앙생활은 꾸준히 해야 합니다. 믿다가 안 믿으면 시험에 들어요. 다음 주부터 우리 다시 예배드립시다.”

아버지 같은 장로님의 격려에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됐다. 몇 달 후 사촌 동생을 데리고 점심에 산에 갔다. 동생에게 자랑했다. “저번에 내 기도가 어땠냐.” “어, 형 잘하던데.” “그래, 지금은 더 잘할 수 있다. 우리 저 바위에 걸터앉아 기도를 해보자.”

눈을 떠보니 사촌 동생은 사라졌고 해가 지고 있었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 보였다. 하늘이 빛나고 온 천지가 생동감이 넘쳤다. 산에서 나무가 넘실거리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

‘와, 세상에 기도가 이런 것이었구나.’ 그때부터 기도의 강력한 영적 체험을 하고 부모 형제가 예수 믿도록 100일 작정 기도에 들어갔다.

“주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우리 가족들 꼭 예수 믿게 해주세요. 주님!” 그런데 100일 기도가 마무리될 때쯤 서울의 동생한테서 편지가 왔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