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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역 전희수•권금주 목사 “인생에서 잘 한 것은 하나님을 만난 것”

입력 2018-07-09 09:56:02
미주국민일보-국민문화재단 공동기획
 

목회자 탐방<5> 기쁨과영광교회 전희수•권금주 목사
 
기쁨과영광교회 권금주 목사(왼쪽)와 전희수 목사.

‘지란지교’는 여기 두 목사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전도사 시절부터 기쁨과영광교회까지 20년을 동역한 전희수•권금주 목사. 또 각각  글로벌한인여성목회자연합회 연합회장과 뉴욕회장을 맡아 뉴욕의 여성목회자와 연합 사역에 힘쓴다. 

하나님의 은총에 누구보다도 감사하다는 두 목사. 그런데 목사는 원치 않았었다고. 그러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하나님과도, 두 목사와도 만날 수 밖에 없는 인연이다. 생활 자체가 ‘간증’이었다. 특히 전희수 목사는.

인생의 중반에 시작된 만남. 누구나 이런 인연을 꿈꾸지 않을까. 


어머니들 마음은 직분 떠나 비슷
여성이 사역 중심인 곳 돕고 연합


-글로벌한인여성목회자연합회가 2년 째다. 체계가 잡혔나.
전희수 목사(이하 전): 올해 9월 2주년이다. 현재 회칙은 특별히 없다. 첫 개척이기에 회장은 2년 정도 할 예정이다. 우리 협회는 사역 중심이다. 대외적인 리더가 있을뿐 연합회장은 큰 의미 없다.
 
-지난 2년간 어떠한 사역을 했나.
권금주 목사(이하 권): 사역중심 부문은 어머니기도회, 중보기도회, 선교, 성경세미나, 글로벌어머니합창단 등 5가지다. 선교는 관계 속에서 도움이 필요한 곳을 후원한다. 최근엔 새생명선교회 등을 돕고 연합하고 있다. 여성들이 사역의 중심인 곳을 돕는다.

-여성 목회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의미는.
권: 매월 어머니기도회는 평균 25명 참석한다. 어머니들만의 공통점이 있다. 공감할 수 있는 기도 주제를 정하고 간증한다. 어머니들의 마음은 직분을 떠나 비슷하다. 

또 남자보다 연약한 부분이 있어 동역을 하면 힘이 될 수 있다.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사역을 해왔다.

-어떤점이 연약하다는 건가.
권: 예를 들어 전 목사와 제가 동역하듯이 혼자 하기보다 같이 하면 낫다. 대화를 해보면 여성들만이 느끼는 힘든 점이 있다. 사역이 진실성이 있으면 도움 요청이 없어도 다가간다.

전: 새생명선교회 같이 여성 전도사가 12년간 조용히 사랑의 음악회를 열었다. 그런 분들을 발굴해 함께한다. 글로벌여목연은 명목상 총괄회장이 있지만 총무•서기란 직함이 없다. 각자의 은사를 발굴한다. 어머니기도회는 어머니기도회 담당이 있는 격이다. 

총무라는 직함은 없지만…그러니까 모두 총무다. 음악이면 음악총무, 선교면 선교총무, 중보기도를 담당하시는 분은 담당 총무를 하는 등 이렇게 운용한다.

처음엔 총무가 있었지만 전체를 콘트롤 하기엔 전문분야가 조금씩 달랐다. 그래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은사를 계발해 할 수 있는 파트에서 총무를 하고 있다. 

-여성목회자 단체를 따로 구분짓는 이유는. 
전: 현재 뉴욕교계가 여성들을 많이 세우는 것은 여성목회단체가 생긴 이후다. 그 전에는 비중이 높지 않았다. 단체가 생김으로써 여성들이 세워졌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권: 여성목회단체는 늘 있었다. 여성의 위치가 점점 나타나게 된 것이다. 활발히 활동하고 역량을 인정 받자 여성목사의 위상이 높아졌다. 

전: 단체의 힘이 교계에 영향을 준 부분도 있다. 여성들이 교계 활동에 헌신했기에 보수적인 뉴욕도 많이 달라졌다.

-그래도 답답하지 않았나.
전: 우리는 목회만 했지 단체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권 목사와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교회만 집중했다. 퀸즈한인교회서 서로 만난 후 2000년 교회를 시작했다. 교회에만 집중했지 협력사역은 생각도 안 했다. 오히려 목사가 교회에 집중하지 않고 돌아다니면 비판하던 입장이었다. 

권: 여러 단체에서 제안을 받았지만 별로 관심이 없었다. 교회에만 있다가 나중에 활동하기 시작했다.


전 “27세에 남편 사별, 37세에 하나님 만나”
권 “학창시절 채플시간 싫어 도망다녀”


-어떻게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됐는지.
전: 난 37세에 하나님을 만났다. 27세에 남편과 사별하고, 딸 하나 있다. 37세까지 직장생활 하다가 기도하는 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극적인 역사가 일어났다. 30대 후반 사업가의 꿈을 버리고 신학을 공부해 한국에서 전도사 생활을 하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라는 은혜를 주셔서 미국까지 왔다. 

미국에서 교회를 세우는 것은 너무 힘들어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혼자는 못 세우니 남편을 주시든지 목회자 사위를 주시든지 해달라고. 

퀸즈한인교회 전도사 시절, 같은 전도사였던 지금의 권 목사와 권 목사 남편(장로)을 처음 만났다. 찬양사역자인 권 목사 남편이 금요철야를 동역할 때 내 비전을 알고 결단을 내리도록 힘을 줬다. 그래서 2000년 교회를 개척해 첫 에배를 드렸다. 

교회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권 목사의 힘이 컸다. 영어 목회도 가능해 작은 규모라도 교회 학교가 잘 됐다. 

권: 어려서부터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모두 크리스천스쿨을 다녔다. 아침마다 채플시간은 너무 지긋지긋해 도망 다녔다. 미국엔 20대 초반에 왔다. 음악을 좋아하는데 세상 음악을 들으면 슬퍼진다. 그리고 접한 찬송가에 빠졌다. 난 집에서 성령세례를 받았다. 

‘주님 날 위해 죽으셨네’ 그게 믿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퀸즈한인교회를 다녔고 교회 목사님이 저를 너무 이뻐해주셨다. 당시 목사님이 해주신 말씀이 비수같이 꽂혔다. ‘물질로는 사람을,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 

'이 말이 뭘까' 하며 3일 금식을 스스로 선포했다. 그런데 그 금식이 꿀과 같이 달았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생각하며 신학교 진학을 준비했다. 그러나 부모님이 반대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면 부모님을 설득해달라고 기도했다. 어머니는 허락했고 3개월 뒤 아버지도 허락하시며 이왕 할 거면 박사까지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시간이 1년 걸렸다.

누가 종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됐다. 신학교 진학 후 많은 체험을 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임재가 너무 평안했다. ‘아, 하나님이 확실하게 나를 인도하셨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졸업 후 퀸즈한인교회에서 전도 사역을 했다. ‘믿음의 세계’라는 케이블 방송도 3년 했다. 

은혜를 받고 하루 150마일 씩 운전하며 사역을 활발히 했다. 당시 권사님들이 ‘언제 목사안수 받니’라는 말씀을 하셨다. 20년 있던 교회를 떠날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 정든 곳을 떠나려하니.

그런데 적정기도를 드리니 하나님께서 평강으로 인도해 주셨다. 



1997년 퀸즈한인교회서 첫 인연
전도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역


-두 분은 어떻게 만났나.
권: 전 목사는 전도사 시절인 1997년 교회에서 처음 만났다. 전 목사 가족을 가족수련회에서 만났다. 

전: 브롱스의 바나바 전도 세미나에 권 목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갔다. 운전하는 권 목사의 어깨를 살짝 주물러주다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었다. 그 다음부터 함께 기도하자고 제안했다. 금요일에 철야로 동트는 새벽까지 기도했다. 

권 목사가 나를 위해 더 기도 했다. 난 그때 권 목사를 위해 기도한 적 없었는데. 하나님이 권 목사를 통해서 나를 많이 기도시켰다고 하더라. 

권: 어느날 갑자기 성령에 감동이 되는 기도가 있다. 나도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하루 종일 전 목사를 생각하면서 기도하던 때가 있었다. 남편도 전 전도사님을 도와드려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전: 난 혼자 있으니 여러가지 힘든 부분이 있었다. 그때 사랑의 손길을 받았다. 식사할 때, 명절 때 초대해 가족같은 사랑을 줬다.

권: 나도 처음엔 전 목사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우리 교회에 전도사님이 오셨구나 정도. 성령이 저의 마음을 자꾸 전 목사를 생각하게 하고, 기도하게 했다. 

추수감사절 뉴저지에 사는 동생에게 갈 때 혼자 계시는 게 마음에 걸려 전 목사 사무실에 살짝 봉투를 놓고 간적도 있다. 맛있는 거 드시라고. 하나님이 같이 위로를 해 주는 것 같다.

전: 같이 사역하던 권 목사 남편이 어느날 ‘우리 따로 살지 말고 같이 삽시다’ 했다. 처음엔 오랜시간 혼자 살다 보니 같이 사는 게 불편해 거절했다. 하지만 금요찬양을 같이 하고 있었고 기도하는 장소가 필요해졌다. 찬양을 연습할 수 있는 집이 필요했다. 그래서 집을 새로 마련한 뒤 방을 렌트했다. 

2000년 찬양을 연습하기 위해 들어간 집에서 교회를 시작하게 됐다.

: 전 목사와 남편, 아버님이 식탁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 그후 목사안수를 받고 2001년 공식적으로 교회를 개척했다. 지금의 교회는 2003년에 옮겼다.

-두 분의 인연이 깊다.
권: 거의 20년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주위에서 20년간 동역하는걸 부러워하고 대견하게 본다. 보통사람이라면 벌써 수 백번 깨졌을 수 있다. 성령이 하시니까 온 것이다.

전: 동역자를 구했을뿐만 아니라 권 목사 남편까지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이 참 멋있다. 그날 브롱스 세미나에 가던 중 성령의 교통하심이 서로 부부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이 영적인 것을 주신 것이다.

-싸운 적은 없나.
전•권: 자주 싸운다.(웃음) 물론 생활하며 사소한 다툼이 있지만 영적인 것으론 이견이 없다. 

전: '왜 늦게왔냐' '이것 먹고 싶다' 이런 정도다.

권: 그 이상이라면 벌써 깨졌다. 큰 이슈로 싸운적은 없다.


11년 나이 차에도 영적 이견 없어
하나님이 서로에게 긍휼한 마음 주신 것


-서로에게 서운한 적은.
전: 권 목사와 나이 차가 11년이다. 순간 울컥할 수 있지만 곧 마음 속에 긍휼한 마음이 생긴다. 하루를 넘길 수도 없고 내가 괴롭다.

권: 지나다 보면 왜 섭섭한 게 없겠나. 그래서 말을 안 하면 서로가 긍휼한 마음으로, 다시 말을 건네고 화합하게 된다. 

전: 어떤 때는 나보다 권 목사가 언니같다. 투정부리면 권 목사가 언니같이 달랜다. 내 딸은 받아주시는 권 목사님이 불쌍하다고 말한다.(웃음)

-두 분 사이에 나이가 의미 없어 보인다.
전: 어떻게 이렇게 만나게 했을까 놀랍다. 내 성격대로라면 친구를 만나도 권 목사가 아니라고 하면 다시 안 본다. 전도사 시절에도 교회 목사께서 너무 곧으면 부러진다고 했을 정도다. 권 목사와는 안 깨진게 신기하다. 

하나님이 서로의 긍휼한 마음을 주셨다. 나이를 먹을수록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항상 같이 다니시나. 
권: 일이 같으니 항상 같이 다닌다. 혼자 가면 왜 같이 안 왔냐고 묻는다. 

전: 미동부국제기아대책기구에서 회계 제의를 받았을 때도 우리는 협력 사역을 하더라도 동역자가 있기 때문에 같이 가야 된다고 했다. 그래서 같이 섬기고 있다.

-들을수록 놀라운 인연이다.
전: 이렇게 갈 수 있는 건 기적이다.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완전한 것이다. 사실, 어머니가 기도원 가자고 할 때 효도 차원에서 갔다가 주님을 강권적으로 만난을 뿐, 난 주님을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권: 전 목사님은 효도하러 기도원에 갔고 난 음악을 좋아해 찬송가를 듣다가 집에서 성령세례를 받았고. 

전: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어머니가 가자고 하고, 과부가 되어 직장 다니느라 자식을 친정엄마가 키워줬다. 그래서 어머니를 기도원에 모셔다 드리는 게 효도라고 생각해 같이 갔다. 

하나님을 만나러 가지 않았다.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 끝나는 인생, 예수 믿는 자들은 위선자들, 난 자식과 살면서 떳떳하고 죄가 없는데 무슨 회개냐고 생각했다. 이런 나에게 성령이 첫 번째로 회개를 하게 했다. 그래서 7~8시간을 회개했다. 밤새도록. 거기서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다. 은사나 방언 등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하나님께 나를 왜 불렀냐고 했다. 마태복음 5장 16절을 주셨고 기도서 3장 6절 등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다. 말씀과 지혜의 은사를 초창기 때 많이 주셨다. 그런 역사 속에서 교회를 세우라고 하셨는데 권 목사를 만나서 교회를 세우고…내가 지금 70이 넘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다. 

권: 전 목사는 50대에, 난 40대에 교회를 시작했다.

-어머니기도회 시작 이유는.
전: 여성 목사들을 볼 때 목사가 되기까지 힘든 과정을 많이 봤다. 하지만 이런 고통보다 남편의 반대, 자녀 걱정을 하는 어머니들이 많았다. 나도 어머니의 기도로 여기까지 왔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날 목사로 만들었다. 내 인생도, 많은 여성목사들이 어머니의 영향으로 이 사역을 하게 됐다.

-기쁨과영광교회 현황은.
전: 처음보다 부흥은 못 하지만 개척 초기엔 웬만한 큰 교회보다 프로그램도 많았고 숫자도 많았다. 권 목사 덕에 교육은 뉴욕에서 베테랑이었다. 시설은 부족했어도 열정만은 최고였다.

권: 교회를 세우고 주일예배가 끝나면 노방전도를 나갔다. 

전: 전도훈련을 많이 받았고, 목사가 된 지금도 담대하게 전도한다. 전도로 교회를 세워갔다.

권: 처음엔 거실 식탁에서 예배를 드리다 사람이 늘면서 집 지하실로 내려갔다. 의자를 더 마련해 놨는데 곧 사람들로 꽉 찼다.  

교회의 위치가 나빠 부흥이 안 된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우리 동네도 완전히 조용한 주택가였다. 이웃에서 교회에 나온 아이들이 뛰어다니면 항의 들어오고 그랬다. 그래도 큰 문제없이 지내왔으나 더이상 민폐 끼치기 싫어 새로운 자리를 찾아 지금의 자리로 왔다.

전: 지금은 교회가 급성장하지 않았다. 그 시절 교인들이 신분문제 등을 해결하러 오시는 분들이 더러 있었다.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이 교회서 은혜를 받나 테스트를 먼저 해보라고 한다. 왜냐하면 교회와 맞지 않는데 신분 때문에 못 나가면서 힘들어 하는 분들이 있었다.

또 지금은 다 내려놓고 섬기지만 대형교회에서 오래 있다가 조그만 교회를 개척하니 너무 힘들었다. 10년쯤 됐을 때 교회를 닫는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다른 교회로 가시라고 했을 때 다시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개척 때부터 함께 한 교인이 울면서 ‘목사님 이러시면 안된다'고, '이제 정붙이고 있는데 닫을려면 진작 닫지 지금 닫으시면 어떡하냐고.’ 그 가정이 일어나는 바람에 다시 하게됐다. 지금은 교인들이 나가래도 안 나간다.

권: 개척 당시 왔던 그 교인이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가 대학을 가며 졸업예배를 얼마전 했다. 2000년 12월 100일 때 세례를 받았는데 이번엔 대학에 갔다. 아이의 역사가 교회의 역사다.

전: 세상에 좋은 교회, 큰 교회가 많지만 개척 때부터 섬겨온 그 교인은 꾸준히 순종했다. 다 만족할 수 없을텐데 자녀의 축복을 누리고 있다.

-교회 규모에 신경 안쓰시는 것 같다.
전: 전에는 그랬지만 언젠가부터 신경 안쓴다. 성도 수도 몇 십명 정도다. 



교회 3대 목표는 부흥•교육•선교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는 것 중요


-기쁨과영광교회 사역의 중심은.
권: 3대 목표가 부흥, 교육, 선교다. 특별히 해마다 기도하며 목표를 잡는데 올해는 ‘초대교회 같은 교회가 되자’이다. 

-교인들 중 큰 교회로 옮기고 싶어하는 교인이 있을텐데.
권: 이상하게 우리 교인은 안 그러신다. 모두 오래 다니신 교인이다.

전: 목사가 목회하며 재정적인 부담을 갖게 되면 영혼에 관심이 떨어지기 때문에 우리 형편에 맞게 교회 건물도 이렇게 유지하며 내실있게 가고 있다.   

권: 사역도 그렇지만 경제적인 부분을 신경쓰면 아무래도 목회자들이 봐야될 곳을 흐리게 보는 경우가 좀 있다. 그런 부담 갖고 싶지 않다.

-설교는 어떻게 준비하나.
전: 주일 설교는 교대로 하기도 한다. 권 목사는 2세를 위한 영어권도 담당하시고 통역도 하시고. 설교는 성경 중심으로 한다. 지난주는 사도행전을 강연했다.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수 밖에 없는데.
권: 아이들을 위한 상담 등 전문가를 모셔 세미나 등을 한다. 또 성경공부하며 세상 뉴스에 대해 대화를 많이한다. 작은 교회다 보니 친교시간에 많은 얘기가 오가고 분위기도 남다르다. 

또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했을 때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안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고 대화를 하니 새로 오신 분들도 동참하는 등 좋았다.

전: 성도들과 친교시간에 많은 대화를 하고 목사와의 관계도 가까운 교회다. 20년 가까이 되니 이 분들도 신뢰하고, 다른 교회 가라고 해도 안 가신다. 그래서 우린 부흥회를 하지 않는다. 성도들도 원치 않는다. 

-목사란 무엇인가.
권: ‘양을 쳐라, 양을 먹여라’ 주님의 말씀처럼 ‘네가 진짜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먹여라’ 이게 목사의 사명인 것 같다. 양을 치고 먹이는 것이 목사라 생각한다. 

전: ‘너의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6) 이것이 목사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잘 한 것은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매주 생명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요즘 나이를 먹어 철이 드는지 여성들이 만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상처받지 않고 아름답게 꾸려가는게 내 사명이라 생각한다. 

권: 교회를 세운다는게 하고 싶다고 되는게 아니고 하기 싫다고 안하는 것도 아니다. 난 하기 싫었다. 권사로 족했다. 권사가 되면 전도 못하나.

난 목사라는 타이틀을 위선자로 봤다. 난 그렇게 더 잘 될 자신 없었다. 내가 목사라면 평신도들한텐 나에게 기대치가 있다.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목사는 그래야 되는 것 아닌가’하고. 그래서 너무 높은 기준을 맞출 자신이 없었다. 난 하나님께 그냥 평신도로 사역한다고 했지만 하나님이 강압을 하셨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야하니까. 이건 개인적으로 큰 은총이다.

-여성목회자들의 권익증진, 인식전환에 관심이 있으신지.
전: 지금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더 행복하다.

권: 여성목사들도 교회를 많이 세우는데 전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야한다. 이것이 우리의 주 목적이다. 

이승우 기자 newyork@kukminu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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