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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정의’ 삭제하고 ‘다양한 가정’만 강조… 숨은 의도 직시해야

입력 2021-06-01 03:10:01
건강가정기본법개정안반대 전국단체네트워크가 지난 4월 2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동성 결혼 합법화 행사 및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이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 제공




지금 국회에서 ‘건강가정기본법’을 근본적으로 변경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남인순 정춘숙 의원이 중심이 된 개정안은 “가족의 형태를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하며, (…)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족관계를 이루려는 것”을 새로운 기본 이념으로 내세우면서 법명도 아예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바꾸려고 한다.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 정책에 관한 기본법으로 헌법과 가족 관련 개별법의 연결고리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건강가정기본법은 헌법의 규정과 원리를 최대한 구현하고 일반 사법인 민법의 규정을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가족 관련 개별법의 기준과 지침을 제시해야 한다.

먼저, ‘건강가정’의 개념은 폐기돼서는 안 된다. 건강가정기본법의 ‘건강가정’은 “가족 구성원의 욕구가 충족되고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가정”을 말한다. 그런데 개정안은 이를 삭제하고자 한다. 개정론자들은 건강가정이라는 개념이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을 포괄하지 못하고 건강가정 시책이 가족 돌봄의 지원 등 변화하는 가족의 욕구를 포괄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오해와 무지에 가까운 인식이다. 여기서 ‘건강’이란 가정을 수식하는 단순한 형용사가 아니라, ‘가정의 건강성’을 의미하는 명사다. 즉, 신체 정신 사회 모든 영역에서 가족생활의 기능 향상(건강성)을 지향한다는 의미이다. 또 건강가정 개념이 헌법 제36조 제1항의 가족생활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는 가족생활’을 부분적으로 구체화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헌법의 가족생활(가정)은 헌법 제10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과 제11조 ‘평등원칙과 평등권’의 기초 위에서 사회적 기본권의 성격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개념이다. 그래서 헌법의 가족생활(가정)은 가족 구성원이 모두 존중되며 평등한 관계 가운데 각자의 욕구가 충족되고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가족생활(가정)이라 할 수 있다. 즉, ‘존엄과 (양성) 평등이 존중되며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가족생활(가정)’이다. 그렇다면 건강가정은 헌법이 추구하는 가족생활의 부분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기본법에서 가족의 정의 규정을 삭제하면 안 된다. 기본법은 관련 개별법에 준용되는 기본 개념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그런데 개정안은 이를 삭제하고자 한다. 그 숨은 의도는 가족 개념을 대통령령으로 정하거나, 아니면 향후 법률 개정으로 재정립하려는 것이라고 본다. 또는 이를 해석론에 맡겨서 여성가족부의 판단에 따라 가족 관련 법률을 적용하는 결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가족 정책에 대한 여성가족부 재량이 넓어지게 될 것이다.

가족 개념이 삭제됨으로써 규범적 혼란도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사실혼이나 혼인 의사가 없는 비혼 동거를 가족으로 인정하면 법률혼 제도가 무너지게 된다. 이와 관련해 의회유보원칙이 문제가 된다. 의회유보원칙이란 국회가 입법권을 가지고 국회 입법중심주의를 취하고 있는 이상, 법률이 규율하고자 하는 사항 가운데 중요하거나 본질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국회가 독점적으로 법률에서 정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따라서 국회 아닌 다른 기관이 법률에서 정할 사항을 결정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세 번째로 다양한 가족 형태 인정은 동성결합 합법화와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개정안은 모든 형태의 가족생활을 동등하게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문제는 개정안이 가족의 정의를 두고 있지 않으므로 “사회적 보호가 있어야 하는 가족”의 범위가 하위 법령 규정 또는 해석론에 따라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그래서 비혼 동거 커플이나 동성 커플도 가족의 한 형태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가족 형태의 다양성’이 동성 커플의 법적 보호를 주장하는 핵심 개념임을 알아야 한다.

또 “가족 형태를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함”을 기본이념으로 내세우는 개정안은 사실상 하나의 차별금지법으로 작동할 것이다. 향후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경우 개정안은 이와 함께 가족 형태를 사유로 한 차별적 언행에 대한 규제의 강력한 법적 근거가 될 것이다. 설사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개정안은 그 자체로서 가족 형태를 사유로 한 차별적 언행에 대한 규제의 근거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행 법체계는 개정안을 거부한다. 개정안에는 ‘건강가정’이 없고, 오직 민주적이고 평등한 ‘다양한 가족’만이 강조된다. 즉 가정은 해체되고 가족은 재구성된다. 비록 명문 규정은 없으나, 해석을 통해 동성결합, 나아가 동성결혼을 수용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교묘한 시도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개정안은 국가 최고법인 헌법과 가족 관계의 기본법인 민법을 교란하거나 바꿈으로써 현행 법체계 질서를 뒤엎으려는 ‘입법 쿠데타’라고 본다. 이런 입법 시도는 체계적 합성의 차원에서 결코 허용될 수 없다.

음선필 교수(홍익대 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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