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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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박종석 (15) 잘 다니고 있는 회사 그만두라는 목사님 기도에 “아멘”

입력 2021-05-31 03:10:01
박종석 엔젤식스 대표는 2019년 38년간 근무한 LG에서 퇴직하고 아내와 인생 3막을 설계하기 위해 한 달 일정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박 대표가 유타주에서 요한복음 8장 32절 속 ‘진리가 주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2016년 회사는 나에게 LG이노텍 대표라는 또 다른 중책을 맡겼다. LG이노텍 상황도 응급은 아니었지만 녹록지 않았다.

전자제품 속 부품을 만드는 회사라 속도감 있게 경영하던 MC사업본부와 달리 무게감 있는 경영이 필요했다. 엔지니어 출신 경영자답게 성장 기반을 다지려고 노력했다. 내가 떠나도 회사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힘썼다. 일할 때 임하는 자세도 달라졌다. 회의할 땐 두 손을 포갠 채 구성원의 말을 들었다. 길게 날숨을 뱉기도 했다. 스스로 터득한 번아웃 예방법이다. 날숨과 손의 온기는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 흥분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됐다.

2018년 가을 원천안디옥교회에서 주일예배가 열리기 전 우리 가족은 김장환 목사님을 만났다. 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시던 목사님은 갑자기 “LG를 그만두고 하나님 위해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LG이노텍 경영자로 잘 다니고 있는 회사를 그만두라는 목사님 기도에 나는 무언가에 끌리 듯 ‘아멘’으로 화답했다. 후에 안 일이지만 목사님은 그날의 이 특별하고 이상한 기도를 기억하지 못했다. 사람의 지혜나 생각이 개입됐다면 나올 수 없는 기도요, 대답이었다. 나는 이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믿는다.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듯 LG이노텍 대표로 부임한 지 3년 만에 나는 38년간 인연을 맺어온 LG에서 은퇴했다. 아니 퇴직했다. 세상은 은퇴라 하지만 나는 퇴직이라 말한다. 은퇴는 인생의 마지막 때에나 온다. 나보다 스물 네 살 위인 김장환 목사님에게 배웠다.

그렇다고 무 자르듯 LG와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게 쉬운 건 아니었다. 퇴직하고 일주일 뒤 아직 현직에 있는 LG사장들과 골프를 치고 헤어졌다. 공허함과 함께 위축된 나를 발견했다.

예수님의 꾸짖는 목소리가 들렸다. “LG사장이 뭐길래 위축되냐. 내가 그런 모습을 보려고 십자가에 못 박혔냐.”

예수님에게 호되게 혼나니 오히려 어깨가 가벼워지고 자유함을 느꼈다.

은퇴 6개월 후인 2019년 5월엔 한달 일정으로 워크숍을 떠났다. 워크숍 주제는 ‘인생 3막, 어떻게 살까’였고, 장소는 미국이었다. 워크숍 참석자는 나와 아내 단 두 명이었다.

나는 두 아이의 결혼식에서 부모를 떠나 둘이 합해 한 몸을 이루라는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 그들이 떠나니 남은 건 우리 부부뿐이었다. 퇴직하고 아내와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로 잘 지내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해졌다.

100세 시대, 우리의 인생 여정을 설계하기로 했다. 방향은 확실했다. 하나님께 가는 일, 하나님 시키는 일만 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심각한 워크숍은 아니었다. 캘리포니아주 LA에서 렌트한 자동차에 골프백 두 개와 짐을 싣고 네바다주를 지나 애리조나주, 콜로라도주, 와이오밍주와 몬태나주에 걸쳐있는 옐로우스톤으로 이동하며 놀고 생각하며 즐겁게 남은 인생을 설계했다.

그리고 인생 3막에서 사용할 옵션도 설정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하나님 일에 사용하기로 했다. 하나는 38년간 LG에서 터득한 ‘문제를 발견하고 해답을 찾는’ 달란트고, 다른 하나는 ‘번아웃’의 경험이었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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