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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교회를 향한 정인이의 마지막 부탁

입력 2021-01-12 03:05:03


정인이가 학대 끝에 목숨을 잃었다. 모두 가슴을 치며 탄식했다. 살릴 수 있는 세 차례의 기회도 놓쳤다. 분노로 타올랐다. 정인이의 양부모가 목회자 자녀들이란 소식에 사람들은 긴 신음을 뱉어냈다. 교회에 대한 세인들의 혐오와 배척이 경계선을 넘어서고 있다.

인류 최초 살인 사건이 떠오른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였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 4:10) 한국교회는 그 ‘핏소리’를 듣고 있는가. 들을 귀가 있기라도 한 걸까. 하나님은 가인을 찾아 질문한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가인은 발뺌한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아벨의 변명은 지금도 이어진다. 대통령은 입양 문제를 꺼내 들었다.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입양이 아닌 학대 문제다. 학대가 입양 가족에 국한되는가. 노출되지 않은 생부·생모의 아동 학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국민의 분노가 들끓고 나서야 국회는 팔을 걷어붙였다. 그렇게 해서 이 사건은 마무리됐는가.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말했다. “나라가 부패하면 부패할수록 그에 비례해 법률이 늘어난다. 옛날엔 범죄 때문에 괴로워하고 지금은 법률 때문에 괴로워한다.”

법보다 앞서야 할 것은 예방 백신이다. 처벌 이전에 예방이 우선이다. 은밀한 일상의 학대가 주위에 노출될 즈음이면 아이는 이미 파괴돼 있다. 뚜렷한 징후가 나타나 신고가 들어올 때쯤이면 만신창이가 돼 있다. 아이는 그동안 지옥에 방치된다. 절벽 아래 구급차도 중요하지만, 절벽 위의 울타리는 더 중요하다.

사회 안전망뿐만 아니라 예방 백신인 가정 안전망도 재구축해야 한다. 1차 양육책임자인 부모를 교육하고 훈련해야 한다. 나라마다 부모 자격증을 이야기하는 이유다. 몰랐다는 것은 면죄부가 아니다. 자신이 독친(toxic parent)인 줄도 모른 채 독을 내뿜으면서 자녀를 죽이도록 내버려 둬선 안 된다.

독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분노다. 분노가 폭발하는 부모의 몸은 폭력을 행사하는 직접적 살인 도구다. 파괴적이고 반인륜적이다. 기독교 가정도, 목회자 가정도 예외일 수 없다.

2015년 하이패밀리가 국민일보와 함께 전국 크리스천 부모 500명과 자녀 450명을 대상으로 부모 역할의 건강도를 조사했다. 부모들은 10명 중 6명(59%)이 거의 화를 안 낸다고 답했다. 자녀들은 달랐다. 자녀 10명 중 5명(54%) 정도는 부모가 화를 낸다고 응답했다. 분노 조절에 대해서도 10명 중 9명(91%)의 부모는 화를 가라앉힐 줄 안다고 했지만, 자녀들은 10명 중 4명(36%) 정도만이 부모가 화를 가라앉히는 법을 안다고 응답했다. 부모의 자기인식 능력 결여가 명백히 드러났다.

분노 유발 요인은 다양하다. 자녀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왜곡된 자녀관을 수정해야 한다. 잘못된 양육 태도를 비롯해 자기중심적이고 물질주의적·세상적 가치관을 뜯어고쳐야 한다. 양육 스트레스, 공감 불능, 무지와 무감각, 치유되지 않은 어린 시절 상처 등 내면의 치유가 우선이다. 부모가 자신의 분노를 조절할 수 없다면 제2의 정인이는 예고돼 있다.

교회가 안타까움에만 머문다면 더 희망이 없다. 성명서 몇 줄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새로운교회(한홍 목사)의 제안대로 이제는 교회가 입양 문제와 자녀 양육에 대한 콘텐츠로 답해야 한다. 가정사역을 교회 장신구나 행사가 아닌 본질로 회복해야 한다.

코로나19는 가족의 가치를 회복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새해 벽두에 정인이 사건이 또다시 교회에 요구한다. “하나님의 첫 작품인 가정 살리는 일을 외면하지 말라”고. 어쩌면 이것이 교회를 향한 마지막 경고일지 모른다. 아니, 교회를 향한 어린 생명 정인이의 마지막 부탁이다.

김향숙 박사(하이패밀리공동대표, 이모션코칭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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