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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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 신부의 품격을 위하여

입력 2020-10-29 12:10:01


“밭에 풀 좀 깎아라! 쓰레기도 좀 치우고….” 아래 논에서 벼농사를 짓는 한씨 할머니, 바로 길 곁에 있는 밭에서 고구마와 들깨 농사를 짓는 김씨 할머니, 나를 볼 때마다 깻잎이니 콩잎이니 밭에서 딴 것을 한 움큼씩 쥐여주시며 한마디씩 하십니다. 평생 도시에서만 살아온 우리 식구들이 도무지 시골 살림이 어떤 건지 모르고 살아가니 그분들 눈에 한심하기 말할 수 없습니다. 집 앞 텃밭에서 잡초가 우거지고, 정원이라고 만들어 놓은 꽃밭에도 풀만 가득 차 있습니다. 철에 따라 꼭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철이 돼도 도무지 뭘 해야 할지 알지 못하니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아직 철부지일 뿐입니다. 주변 어르신들의 논밭에서 깨끗하고 무성하게 자라나는 작물들을 볼 때마다 부럽기가 그지없습니다.

농사꾼의 품격은 그가 짓는 밭으로 결정된다는 것, 평생토록 농사지으며 살아온 농부 어르신들을 존경해야 한다는 것, 늘 겸손해야 한다는 것은 시골살이에서 얻은 귀중한 깨달음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새로운 깨달음을 가져다줍니다. 나의 품격을 결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남편인 나의 품격은 아내에 의해 결정되고, 아버지로서 나의 품격은 자식들의 성품과 태도로 결정됩니다. 나를 자랑하고 나의 품격을 격상시키려 애써 보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선생의 품격은 제자들의 성장한 수준에서 결정되고, 학자의 품격은 연구한 학문에 의해 결정되며, 목사의 품격은 신앙공동체 구성원들의 인격과 삶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그것들을 생각하면 나는 더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합니다. 시골살이의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농자천하지대본의 이유가 무엇인지 경험적으로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요즈음엔 한 사람의 품격을 인격이라고 하듯이 한 가족, 가문에도 품격이 있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도 품격이 있으며 학교에도 품격이 있고 마을과 지역사회에도 품격이 있다는 사실을 성찰하고 있습니다. 나라에도 품격이 있어 국격이라고 합니다. 역사 이래 끊임없이 침략을 당하고 식민지와 동족상잔 그리고 오랜 개발독재의 권위주의 정권을 경험한 우리나라의 국격이 나에겐 그다지 자랑스럽지 못했습니다. 근래에 이르러 우리의 영화가 영화제들의 대상을 휩쓸고 K팝 가수들과 축구 야구 선수들이 세계인에게 감동을 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역병을 막아내고 경제를 지켜내는 동안 세계인의 인정을 받게 돼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방금 진행된 국회 국정감사와 본회의에서 보여주는 의원들의 모습을 보며 ‘역시나’로 돌아가게 됩니다.

나의 관심이 가장 집중되는 것은 교회의 품격입니다. 좀 더 나아가서는 기독교의 품격입니다. 억울하긴 하지만 우리 교회와 기독교의 품격이 너무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품격은 기독교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회일반의 기독교 경험과 인식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께서 우리의 심판자이며 평가자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민족과 역사와 사회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결정하실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는 이 시대의 작은 자들이며 민중이며 씨알입니다.

성경은 창세기 첫 부분에서 아담과 하와의 결혼으로 시작해 요한계시록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와 교회의 결혼으로 끝마칩니다. 개인의 결혼에서 신앙공동체의 결혼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성경 속의 비밀입니다. 예수이신 이 시대의 민중은 과연 오늘의 교회와 결혼하려 할까요? 예수의 신부로서 품격을 갖추기 위해 교회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계 19:8)로 옷 입어야만 합니다.

유장춘 (한동대 교수·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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