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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성경 속 식물 ‘갈대’] 흔들려도 괜찮아 내가 너를 그냥 버려두지 않고 고쳐줄게

입력 2020-07-17 02:55:01
픽사베이


라파엘로 산치오가 그린 ‘물에서 구원받은 모세’(1519년 작·바티칸 사도궁전 소장).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사 42:3)

많은 크리스천이 ‘갈대’를 생각하면 떠올리는 성경 구절 중 하나다. 여기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란 말은 이사야 선지자가 양 떼를 치는 목자들이 만들어서 불던 갈대 피리를 연상해 표현한 것이다. 당시 목자들은 갈대 피리가 망가지면 버리고 얼마든지 손쉽게 만들 수 있지만 외로움을 달래주던 피리를 쉽게 버리지 않고 다시 고쳐 썼다. 목자 되신 하나님은 죄로 인해 망가지고 상한 우리를 버리지 않고 고쳐서 새롭게 살아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미국 그레이스 커뮤니티교회 존 맥아더 목사는 저서 ‘하나님 나라의 비유’에서 주님은 쉽게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고 거듭 강조한다.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는 사회적인 낙오자를 상징한다.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그들을 거절하지 않고 포용하고 가르치고 치유하고 고쳐주고 섬겨주실 것이다.” 즉 성경이 말하는 상한 갈대는 눈 먼 자, 포로된 자, 가난하고 병든 자, 좌절과 낙망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사회가 쓸모없다고 왕따시킨 사람들이다. 주님은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회생할 수 없는 상처 입은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의미이다.

성경 속의 갈대

갈대가 자라는 곳은 고요한 평원이 아니라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강가나 바닷가가 가까운 언덕길이다. 갈대는 혼자 자라지 않고 서로 의지하며 군락을 이루며 살아간다. 갈대는 볏과 갈대 속의 다년초로 하천 및 호수, 습지나 갯가의 모래땅에 키가 큰 군락을 형성한다.

성경엔 갈대가 자주 등장하지만 그 뜻과 의미가 다르다. 일반적으로 연약한 것(겔 29:6), 변덕스러운 것(마 11:7), 날카롭게 찌르는 것(왕하 18:21) 등에 사용됐다. 원문 번역주석 성경(고영민 역, 쿰란 출판사)에 의하면 성경에는 갈대로 번역되는 3종류의 갈대가 있다.

먼저 모세의 ‘갈대 상자’에 사용된 갈대이다. 이 갈대는 히브리어로 ‘고매’이며 현대어로 ‘파피루스’이다. 요게벳이 태어난 지 석 달도 안 된 아기 모세를 넣은 갈대 상자는 파피루스로 만든 상자이다.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강가 갈대 사이에 두고.”(출 2:3)

고대 이집트 나일강 주변엔 파피루스가 무성하게 자랐다. 파피루스 줄기 속은 파피루스 종이를 만들었고 줄기와 잎은 엮어서 상자나 배 등을 만들었다. 상자 안에 역청(사해 부근에서 나는 끈적한 기름 덩어리)과 나무 송진을 칠하면 조그마한 배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갈대 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사 18:2) 파피루스는 그리스에서 비블로스(Papyros)로 불렀으며, 비블로스는 그리스어로 책이란 뜻의 성경(bible)의 어원이 됐다.

또 나일강의 수위를 측정하는 도구로 사용된 장대로 기록된 갈대도 있다. “손에 삼 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지고.”(겔 40:3) “손에 측량하는 장대를 잡았는데.”(겔 40:5)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계11:1) 여기서 ‘장대’는 대나무처럼 곧게 자라며 마디가 있는 갈대를 가리킨다. 흔히 알고 있는 가녀린 갈대가 아닌 마디가 굵은 페르시아 갈대이다.

또 강가에 있는 잡초들을 표현할 때 갈대도 포함됐다. 아기 모세를 넣은 갈대 상자는 이런 갈대밭 사이에 놓였다. 바로왕의 꿈에 나타난 갈대밭도 여기에 해당한다.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창 41:2) 홍해를 ‘갈대 바다’(70인역)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바다 주변에 갈대가 많았고 붉은 조개나 수초들 때문에 붉게 보인 데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위대함과 비참함의 사이

바람에 쉽게 흔들리는 갈대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연약한 인간의 마음을 떠올린다.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이 ‘팡세’에서 갈대를 인간에 비유해 말했다.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인간은 대자연 가운데 ‘한 개의 갈대’와 같이 가냘픈 존재에 지나지 않으나 생각하는 데 따라서는 이 우주를 포옹할 수도 있는 위대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생각하는 갈대’는 위대함과 비참함을 함께 지닌다. 모순된 양극을 공유하는 인간의 마음 밑바닥엔 늘 불안이 싹트며 흔들린다.

그러나 갈대는 생명력이 강하다. 가늘고 길어 잘 휘어지지만 휘어짐 덕분에 강한 물살과 바람을 견디어 낸다. 갈대의 휘어짐이 갈대를 갈대답게 만들 듯이 인간의 고민과 성찰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준다.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고정희의 시 ‘상한 영혼을 위하여’ 중에서)

시인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구원이 하늘로부터 온다는 것을 믿기에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영원한 눈물 영원한 비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초월자에 대한 굳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도 세상의 역경에 쉽게 흔들리지만 주님은 괜찮다고 말씀하신다.‘흔들려도 괜찮아. 내가 너를 그냥 버려두지 않고 고쳐줄게.’

이지현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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