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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역류질환인 줄 알았는데 ‘식도이완불능’… 방치땐 암 위험 17배

입력 2020-03-31 04:05:02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박효진 교수가 지난 26일 한 남성에게 식도 아칼라지아 질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상 식도(왼쪽)와 아칼라지아가 심하게 진행돼 식도가 확장돼 있는 모습의 X선영상.


식도-위 경계 괄약근 불완전 이완
밥·물 등 제대로 못 삼키거나 식사 후에 압박감·가슴 통증
내시경 주변 근육 절개술 효과적… 천천히 식사하고 찬물은 삼가야


주부 박모(42)씨는 지난 7년간 물과 밥을 잘 삼키지 못하고 가슴이 타는 듯한 쓰림 증상으로 고통에 시달렸다. 여러 병원을 전전했으나 그때마다 스트레스에 의한 신경성이라거나 위·식도역류질환이라는 답변만 들었다. 관련 치료도 받아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박씨는 우연히 방송을 보다가 자신의 증상이 ‘식도 아칼라지아’라는 병과 비슷함을 알게 됐다. 해당 병원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진단과 함께 내시경 치료를 받았다. 박씨는 “이젠 밥 같은 덩어리 음식도 마음껏 즐기고 있다”면서 “비슷한 증상을 겪으면서도 어떤 병인지 몰라 고통받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아칼라지아(achalasia)는 식도와 위의 경계부위 조임 근육(괄약근)이 불완전하게 이완되면서 음식을 삼키기 어려운 질환이다. ‘식도 이완 불능증’으로도 불린다.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희귀병은 아니다.

30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아칼라지아로 병원을 찾은 사람들은 지난 5년간 매년 1100~1800여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진료 환자는 1478명이었다. 60대가 20.2%로 가장 많았으며 40~70대가 전체의 71%를 차지했다.

식도·위 경계 부위 조임 근육의 이완을 담당하는 ‘억제성 신경’이 손상돼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명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원인을 알 수 없는 특발성으로 분류된다. 다만 식도 벽 내에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에 의한 염증 질환을 겪거나 식도·위 접합부에 암이 생기는 경우 식도 조임 근육 기능이 떨어져 아칼라지아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박효진 교수는 “미주나 남미 국가에선 기생충 감염에 의한 식도 염증질환으로 2차성 아칼라지아가 발생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지만 국내에선 해당 기생충의 숙주가 없어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칼라지아 증상을 가진 사람들 중 약 2%는 가족에서 비슷한 증상이 발견되는 가족형도 보고돼 있다.

정상인의 식도 길이는 20~24㎝ 정도 된다. 아칼라지아 증상이 있는 이들에게 바륨 조영제를 삼키게 한 뒤 X선 영상을 살펴보면 바륨이 식도를 통해 내려갈 때 식도 내부가 심하게 늘어나는 걸 알 수 있다. 식도·위 조임근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음식물이 위로 넘어가지 못하고 식도 내부에 고이면서 확장되기 때문이다. 위와 가까워질수록 식도 내 공간이 급격히 좁아져 ‘새부리’ 모양을 보이고 병이 심하게 진행되면 식도의 굴곡이 ‘S자’ 형태로 변한다.

아칼라라지아 환자들이 호소하는 흔한 증상은 밥이나 물, 음료수 등을 제대로 넘길 수 없는 삼킴 곤란이다. 간혹 식사 후 가슴이 답답하거나 무거워지는 느낌이 받기도 한다. 때론 좁아진 아래쪽 식도가 늘어난 위쪽 식도에 눌려 압박감과 가슴통증이 발생하기 때문에 협심증, 심근경색 같은 심장질환으로 오인할 수 있다.

위로 넘어가지 못하고 식도에 고인 음식물이 아침 기상 시 입 밖으로 흘러나와 있거나 잠자는 동안 역류된 음식물로 인해 기침을 하거나 기도 안에 걸릴 수도 있다. 음식물이 기관지로 넘어가면 ‘흡인성 폐렴’을 유발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음식을 원활하게 삼키지 못함에 따라 체중 감소도 따르고 식도 안에 머물던 음식물 때문에 식도염이 생기거나 식도 궤양으로 진행될 우려도 있다.

특히 위산의 역류로 인해 비슷한 고통이 따르는 위·식도역류질환과는 감별해야 한다. 박 교수는 “서구식 식생활이나 식사 후 바로 눕는 습관 등으로 생기는 위·식도역류질환은 식도·위 조임 근육이 너무 느슨해져 위산이 거꾸로 식도로 넘어와 여러 증상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칼라지아로 음식이 식도에 고이면 세균이 젖산을 만들어내는데, 이로 인해 신냄새나 신트림이 자꾸 나오고 가슴쓰림 증상도 동반되기도 해 위·식역류질환과 오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아칼라지아를 방치할 경우 식도암 위험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박 교수팀의 지난해 연구논문에 의하면 아칼라지아 환자의 식도 점막에서 종양 유전자 발현이 증가했고 식도암 발생 위험이 정상인 보다 7~17배 높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박 교수는 “음식물이 식도 내부에 만성적으로 고이면 식도염이 발생하고 자꾸 자극을 받게 된 식도 점막세포가 변성돼 암으로 진행된다”면서 “10년 넘게 아칼라지아 증상을 겪어왔다면 현재 상태와 상관없이 1년마다 한 번씩 내시경 검진을 받는 게 좋다”고 권고했다. 아칼라지아의 진단에는 바륨 식도조영술(X선)과 함께 식도 내부압력 측정 검사가 꼭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 식도 내시경, 식도 통과 스캔 검사도 추가로 받아야 한다.

식도 신경과 조임 근육 이상으로 발생하는 아칼라지아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다. 삼킨 음식물이 식도에서 위로 무리없이 넘어가도록 조임근 압력을 감소시키는 치료법(약물, 수술, 내시경 풍선 확장술 등)이 주로 쓰인다.

최근 식도가 심하게 확장된 환자들에겐 입으로 넣은 내시경을 통해 조임근 등 주변 근육을 절개해 압력을 줄이는 시술이 효과적이며 합병증 위험을 낮춰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박 교수팀은 아칼라지아로 S자 식도로 변형된 환자 13명에게 절개 수술 대신 이 방법을 적용한 결과 모든 환자에서 삼킴곤란 증상이 개선됐고 11명은 식도 형태가 정상 회복되는 효과를 확인했다. 아칼라지아 환자들은 식사 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정상인 보다 천천히 식사하고 충분히 씹어 음식물을 섭취해야 한다. 야식을 삼가고 찬물은 식도 기능을 떨어뜨려 피해야 한다. 식사 후 바로 자리에 눕지 않는 게 좋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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