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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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진흙 속의 연꽃

입력 2020-02-28 04:05:02


“제가 과연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상처를 겪은 분들의 질문에 치료자들은 답한다. 돌아갈 수 없다고. 잔인한 말 같지만 많은 피해자분들은 이 대답에 안심한다. 오히려 “곧 괜찮아질 거야.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라는 위로의 말이 더 잔인하게 들린다고 한다. 도저히 돌아갈 수 없을 것 같건만 모두들 괜찮다고, 곧 돌아갈 거라고 하니 나만 문제인가 싶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치료자들은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일까.

‘외상후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는 정신과학 용어가 있다. 원래 외상 후 ‘후유 장애,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라는 진단만 있었다. 그런데 트라우마 이후 영적인 성장 속에 살며 나아가는 사람들, 내면이 더욱 단단해진 사례들이 나타나면서 ‘외상후성장’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부러진 뼈가 비록 모양은 예쁘지 않을지언정 더 단단히 붙어 튼튼해지듯이 말이다.

사람도, 사회도 충격적인 사건 후 그 전과 같은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다. 전쟁과 테러 등 극악한 사건 이후 마치 겉으로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대로인 양 보이지만, 그 아래에서 고통과 상처가 썩어 만들어진 혐오와 부패의 냄새가 대를 이어 사회를 망가뜨리는 일들을 우리는 보아오지 않았던가.

재난 속에 자신보다 더 어려운 계층에게 재난물품을 양보하는 국민들, 앞 다투어 어려운 일에 나서고 약자를 위한 자신의 희생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그리고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이 더 큰 상처를 받지 않도록 의연히 일상을 견뎌내는 어른들. 이 모두가 우리 사회의 외상후성장을 이끈다. 우리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견뎌낸 뒤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더 건강하고 단단한 사회를 전해줄 것이다.

배승민 의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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