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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 아카펠라풍의 선교

입력 2020-01-30 12:05:01


아카펠라(a cappella)는 악기 없이 사람의 목소리로만 연주되는 음악이다. 아카펠라의 문자적 의미는 ‘채플의 방식에 따라서(in the manner of a chapel)’다. 이 단어의 기원은 이렇다. 4세기의 성자 성 마르티누스(St. Martin)가 어느 날 추위에 떨고 있는 한 걸인을 만났다. 당시 군인이었던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망토(라틴어로는 cappa)를 반으로 잘라 한 쪽을 그 걸인에게 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걸인은 변장하고 오신 그리스도였다. 그 후 나머지 한쪽 망토는 프랑크 왕국에서 성물로 여겨졌고, 왕이 전장에 나갈 때마다 왕의 숙소 옆 천막에 모셨다고 한다. 그 천막을 채플(chapel)이라고 불렀고, 천막을 지키는 사제를 채플린(chaplain)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오르간 같은 악기가 갖춰지지 않은 채플에서 무반주로 찬송가를 불렀을 것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이 목소리로만 연주하는 음악을 아카펠라라고 하게 된 배경이다.

아카펠라, 즉 ‘채플의 방식’은 선교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한다. 우리는 선교가 ‘교회의 선교’ 모델에서 ‘하나님의 선교’ 모델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교회가 선교의 중심으로 남아 있다. ‘교회 중심의 선교’와 ‘채플 중심의 선교’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자. 프랑크 왕도 평소에는 국가의 수도에 있는 가장 큰 성당에서 파이프오르간 반주에 맞춰 대합창단이 부르는 성가를 들으면서 모든 격식을 갖춘 예배를 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나면 전쟁터 숙소 옆에 있는 채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는 기도를 했을 것이다. 채플은 이런 점에서 현장성, 주변성, 간이성, 이동성, 개방성, 비격식성 등의 특징을 갖고 있다.

유럽이 기독교 문명에 속해 있을 때 교회는 모든 삶의 중심이었다. 세례증명서가 출생증명서 역할을 하던 시대에는 교회와 분리된 다른 영역은 없었다. 다만 전쟁 등의 비상시에만 교회를 떠나 야전 채플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계몽주의와 세속화의 흐름 이후 유럽에서 교회는 더 이상 일상생활의 중심 역할을 하지 못한다. 교회는 이전과 같은 권위와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더구나 우리나라와 같이 선교를 받은 지역에서는 역사상 어느 한순간도 교회가 생활의 중심인 적은 없었다. 교회 중심의 신학, 선교, 예배는 어떻게 보면 허상이다. 오늘날 전 세계 모든 기독교 예배 공동체는 교회의 성격보다는 채플의 성격을 띠고 있다. 교회 모델에서 채플 모델로의 전환은 유대교가 성전 중심에서 회당 중심으로 전환한 것 이상의 중요한 인식 전환이다.

채플 중심 선교와 교회 중심 선교는 근본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가 세상이나 사회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전문화가 되어 있어서 각 영역 고유의 질서와 권위체계가 수립되어 있다. 군목이 군대 고유의 계급 질서를 인정하며 선교활동을 하고, 기독교 학교가 기독교적 창립정신과 함께 대한민국의 교육 이념을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교회도 대한민국의 헌법을 존중하고 선교를 해야 하는 것처럼 아카펠라풍의 선교는 세속 영역의 권위를 우선 인정해야 한다.

둘째로 선교 대상자의 교회 출석이 아니라 그들이 각 영역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자각하고 그 사명을 전문적으로 수행함으로써 하나님 나라 건설에 동참하게 돕는 것이다. 급변하는 세계의 흐름 속에서 기독교 선교는 아카펠라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군목, 교목, 원목 등 이미 여러 영역에서 오랫동안 선교해온 채플린들이 서로 협력하고 신학적인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교회가 선교에 대한 후원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의 선교를 아카펠라풍으로 바꾸기 위해 인재를 훈련하고, 선교의 목적을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에 두는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이대성 연세대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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