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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최영진] 북·미 정상회담의 허와 실

입력 2018-06-14 05:05:05


호기심과 기대 그리고 우려가 얽혔던 북·미 정상회담이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렸다. 외견상 두 정상은 각자 원하는 것을 취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국가 핵무력 완성’ 이후 대결보다는 협력으로 생존 전략을 전환하고자 했는데 이 길을 열어놓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복잡한 국내 문제를 덮을 국제적 성공을 이루고자 했는데, 결국 ‘적절한 타협’을 했다.

두 지도자가 역사적으로 처음 만나는 장면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을 한쪽으로 치우자. 그러면 정상회담의 허와 실을 살펴볼 수 있게 된다. 북·미 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 3개 사항이 공동선언의 추축을 이룬다. 그런데 아무런 내용이 없다. 앞으로 진행 상황을 봐야겠지만, 일단 ‘태산명동서일필’이라는 감을 지울 수가 없다.

북·미 관계 개선과 수교는 북한이 국제사회로 편입되는 긍정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좋은 일이다. 장애요소가 많지만 기대해보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부분도 미국의 CVID가 ‘관리’보다 워낙 ‘해결’을 좋아하는 미국 특유의 외교수단이어서, 이보다는 우리가 판문점 선언에서 사용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이 더 실천력이 있다. 그런데 판문점 선언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부분이다. 두 정상은 한국 같은 동맹국을 관여시키지 않고 북·미 간 조치로 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에서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을 선언했다. 북한은 미국이 신뢰구축 조치를 취하면 상응 조치가 있을 것이며 이에 따라 비핵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환영했다. 놀라운 일이다. 동맹국과 상의 없이 연합 훈련을 북한과의 합의 와중에 미국이 발표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철학의 문제다. 동맹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평화는 우리가 우선 지킨다는 철학을 되새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북·미 정상회담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핵과 경제다. 비핵화는 길고 먼 여정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핵이 아니라 경제가 북한의 미래를 결정한다. 이 핵심적인 문제에 대한 답은 두 정상이 택한 ‘적절한 타협’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것은 북한 정권이 안고 있는 딜레마에서 찾아야 한다. 북한은 통제와 개혁, 즉 핵과 경제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북한의 핵과 경제, 병진 정책은 정책이 아니라 딜레마의 표현이다. 그래서 김정은은 핵과 경제 사이에서 생존의 선을 뚜렷하게 긋지 못한 채 회담에 임할 수밖에 없었고, 트럼프 대통령도 적절한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했다’거나 ‘북한이 핵을 버리고 경제를 택했다’는 성급한 판단이나 희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이 북한에 체제 보장을 해주겠다거나 경제 발전을 지원하겠다고 하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 정권교체나 다른 공격적 위협을 가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리비아와 달리 북한같이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고 안정된 체제에 대해 쓸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북한이 주장하는 체제 보장은 한·미동맹을 겨냥한 외교적 카드일 뿐이다. 북한 체제에 대한 위협은 밖이 아니라 강력한 통제로만 유지되는 북한 정권의 통치 스타일에 있다. 그래서 북한의 체제 보장은 오직 북한만이 할 수 있다. 또 경제 건설로 위대한 북한을 만들어 주겠다고 한 것도 북한이 안고 있는 딜레마의 본질을 못 읽은 탓이다. 북한은 세계 최고의 노동력을 갖고 있어 경제 발전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개방·개혁이 필수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 정권 유지에 필수적인 통제를 풀 수 없다.

미국은 비핵화나 북·미 수교의 성공을 위해 북한 문제의 본질, 즉 생존 딜레마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대북 정책도 북·미 회담의 허와 실을 이해하고 북한 딜레마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방향이 설정돼야 한다.

최영진 전 주미대사 연세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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