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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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전정희] 정신 건강, 마음의 늪

입력 2018-06-13 05:05:03


지난달 수도권 한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했다. 지적장애 아동 수십 명이 재활원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버려진 경우도 있었고, 부모로부터 위탁된 아동도 있었다. 지적장애는 제대로 케어가 안 될 경우 정신장애를 동반하기 쉽고 우울증과 조현병 등의 복합 증세를 보이게 된다.

“정작 장애 아동 부모는 전문 시설과 인력이 떠날까봐 전전긍긍합니다. 한데 사회의 시선은 ‘수용’에 급급했던 1950∼80년대에 부정적 인식에 머물러 있어요. 최근 정치적 변화와 함께 인권 문제가 강조되면서 시설 축소가 정책의 근간이 되고 있는데 현장을 모르는 얘기입니다. 그러다보니 정신장애인 입원 여부를 의사가 아닌 법원이 판단하는 안까지 국회 발의된 상태죠.”

재활원 원장은 침울하게 얘기했다. 그는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나쁜 선례를 극단화해 정치세력화 하는 요즘 흐름을 안타까워했다. 문재인정부 등장에 따른 정치적 변화는 사회적 약자층에 대한 경제적 지원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한데 이 지원 시스템 운영을 위탁받으려는 이들이 도덕을 명분으로 한 주도권 싸움판을 벌인다. 그리고 영화 ‘도가니’와 같은 극단적 사례를 일반화하고 이를 기준으로 법제화를 시도해 신뢰와 합의를 불가능하게 한다. 이를테면 정신건강 장애인의 입원 판단 여부를 전문가나 의사가 아닌 법관이 법조문에 근거해 일률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곧 정의가 될 수도 있다.

지난 11일 충북 청주에서 50대 후반의 어머니가 척추장애와 우울증을 앓는 30대 딸의 목을 조른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어머니는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딸이 죽여 달라고 말해 술김에 졸랐다”고 진술했다. 딸은 처벌을 원치 않았다.

우리 사회는 지금 우울증과 조현병 등으로 인한 사건 발생과 그에 따른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조현병 환자는 2013년 11만3280명에서 2017년 12만70명으로 약 6% 증가했다. 매년 증가 추세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범인이 조현병을 앓았지만 그 질병이 ‘묻지마 범죄’의 주원인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견해임에도 시민들은 불안해한다.

정신장애인들에게 시설은 전문가들에 의해 운영되는 학교이며 직장이 되어야 한다. 오로지 부모가 케어한다면 고립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사회는 시설 운영 주체와 입소자 그리고 보호자 간의 신뢰를 존중해야 한다. 또 시민단체는 인권을 이유로 사회복지인의 헌신을 무시하는 일률적 판단을 자제해야 한다. 누구나 마음의 늪을 안고 산다. 늪이 깊으면 병이 된다.

전정희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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